AI로 짠 코드, 며칠 뒤엔 남의 코드 같았다

AI 로 글과 코드를 쓰는 시간이 늘수록 정작 본인이 무엇을 써놨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. 엠아이티 미디어랩(MIT Media Lab) 이 2025년 발표한 Your Brain on ChatGPT 연구는 이 현상을 '인지 부채(cognitive debt)' 라 부른다.
내가 짠 코드를 며칠 뒤 다시 열었는데 "여기 왜 이렇게 했지?" 가 떠오른 적이 있다. AI 가 도와준 부분이었다. 심리학을 전공해 인지 쪽에 한 번 발을 담갔던 사람으로서 그 장면이 묘하게 걸렸다. 효율은 분명히 늘었는데 머리가 같이 따라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의심이었다.
MIT Media Lab이 측정한 '인지 부채'

18세 ~39세 54명, 뇌파를 젠 SAT 에세이 실험
엠아이티 미디어랩 연구진은 18~39세 54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같은 SAT 에세이 과제를 풀게 했다 (출처) 한 그룹은 챗지피티(ChatGPT) 만 사용했고, 다른 그룹은 구글 검색만, 마지막 그룹은 도구 없이 머리로만 글을 썼다. 작업하는 동안 뇌파(EEG) 를 측정해 그룹별 인지 활성을 비교한 설계였다.
결과는 뚜렷했다. 챗지피티 그룹은 작업 내내 뇌 영역 사이의 연결성이 가장 낮게 측정됐다. 도구 없는 그룹의 연결성이 가장 강했고 구글 검색 그룹은 그 사이쯤에 자리했다. 단순한 결론은 "외부 도움이 강할수록 본인의 인지 부담이 줄어든다" 인데, 연구진이 짚은 건 그 이상이었다. 도움이 덜어 준 인지 부담은 학습이 일어나는 자리이기도 하다.
연구진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도구를 바꿔 가며 같은 사람을 다시 시켜 봤다. 챗지피티로 쓴 사람이 다음번에는 도구 없이 쓰는 식이다. 이 순서를 거꾸로 한 그룹과 비교했더니, 처음부터 머리로 시작한 사람이 나중에 도구를 받아도 더 깊은 사고 흔적을 남겼다. 시작점이 어디였는지가 그 다음을 결정한다는 신호였다.
자기 글을 자기가 못 외운다는게 무슨 뜻인가
가장 인상적인 결과는 작업 직후의 회상 테스트였다. "방금 본인이 쓴 문장 하나만 그대로 인용해 보라" 는 단순한 질문에서 챗지피티 그룹은 인용을 거의 해내지 못했다. 자기 손으로 키를 친 문장이 몇 분도 안 돼 머리에서 빠져나갔다는 뜻이다.
이 결과의 무서운 점은 단순한 "AI 쓰면 머리가 안 좋아진다" 가 아니다. 자기 글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단계가 통째로 빠진다는 것이다. 손으로 한 줄씩 작성하면 그 과정에서 작은 결정들이 머릿속에 남는다. 변수명을 왜 이렇게 골랐는지, 왜 이 함수를 분리했는지가 같이 따라온다.
AI 가 한 번에 답을 내놓으면 그 결정 과정을 통째로 건너뛴다. 결과만 받고 내 글이 된다. 며칠 뒤 다시 봤을 때 "여기 왜 이렇게 됐지" 가 안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. 내 머리에 한 번도 들어왔다 나간 적이 없는 글이니까.
머리가 무뎌지는 세 갈래
연구와 별개로 이 현상을 설명하는 길은 보통 셋으로 갈린다. 인지 위임(cognitive offloading) 은 어려운 판단을 외부 도구에 통째로 맡기는 일이다. 단계 생략은 윤곽을 세우고 다듬는 학습 과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. 자기화 실패는 위에서 본 그 현상이다. 결과가 머리에 남지 못해 자기 것이 안 된다.
이 셋은 따로 가지 않는다. AI 에 위임하면 단계가 생략되고, 단계가 생략되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손잡이도 없어진다. 한 번 끊긴 사슬을 다시 잇는 게 보기보다 쉽지 않다. 인지 부채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래서다. 빚처럼 누적되고, 갚지 않으면 불어난다.
잘 쓰는 사람은 답이 아니라 맥락을 던진다

"해줘" 와 "맥락 · 배경 · 목표"의 차이
같은 AI 도구라도 무엇을 묻는지에 따라 결과의 깊이가 달라진다. 자주 보는 패턴은 "이거 좀 해줘" 한 줄이다. 그러면 AI 는 빈 칸을 자기 추측으로 메워 답을 던진다. 받는 사람은 그 추측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 채 결과만 받는다.
# 흔히 쓰는 방식
"이 함수에 캐싱 좀 넣어줘"
# 맥락·배경·목표를 붙인 방식
"이 함수는 사용자 프로필을 매번 DB 에서 읽어 응답이 200ms 다. LRU 캐시로 1분 TTL 을 두고 싶다. 다만 권한 변경 이벤트가 들어오면 즉시 무효화해야 한다. 이 제약을 지키면서 어떻게 짤 수 있는지 후보 두세 가지를 비교해서 보여줘."
차이는 단순한 길이가 아니라 결정권의 위치다. 위쪽은 AI 가 알아서 결정한 코드를 받는다. 아래쪽은 내가 제약을 정해 두고 후보 비교를 받아 그중 하나를 고른다. 받은 결과가 비슷해 보여도 머리에 남는 양은 한참 다르다.
내 초안 위에 AI를 얹는다.
또 자주 쓰는 방식은 내 초안을 먼저 작성한 뒤 "이 방향으로 다듬어 달라" 고 부탁하는 것이다. 글이든 코드든 한 번 손으로 거친 내용은 다시 봤을 때 흐름이 따라온다. AI 는 표현을 매끄럽게 바꾸거나 빠진 케이스를 메워 주는 보조로만 들어온다. 출발점이 내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뒤에 가서도 흐려지지 않는다.
"왜 이렇게 했는지" 를 한 번 더 묻는다
받아 본 결과를 그대로 쓰는 대신 한 번 더 묻는 습관을 들이면 사고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. "이 부분은 왜 이렇게 짰지", "다른 방식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더 낫지" 같은 질문이다. Commoncog 의 본 탄(Vaughn Tan) 룰도 비슷한 결을 짚는다. 주관적 가치 판단까지 외주 주지 않는다. (출처) 채점·평가·취사 선택까지 위임하면 본인 안목이 점점 무뎌진다는 경고다.
효율은 늘었는데 머리도 따라오는지 - 내가 의심한 지점

며칠 뒤 내 코드가 낯설게 보이던 날
처음으로 "어 이게 맞나" 가 든 건 며칠 만에 다시 연 파일에서였다. 분명히 내가 커밋한 코드인데 어느 함수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한 번에 안 들어왔다. 변수명을 보고도 "왜 이걸 이렇게 짰지" 부터 떠올라야 했다. 일주일 전에 짠 코드인데 처음 보는 사람의 코드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.
그날의 차이는 단순했다. 그 코드는 거의 AI 와 같이 짠 것이었다. 손으로 한 줄씩 작성한 부분은 한 줄이라도 떠오르는데, AI 가 한 번에 내준 블록은 통째로 안 떠올랐다. MIT 연구의 "자기 글을 자기가 못 외운다" 가 내 작은 일상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. 심리학 책에서나 읽던 인지 위임이 이렇게 가까이 와 있었다.
머리가 못 한 게 아니라 시간을 안 들인 것이라는 자각
다만 이 자각을 "AI 가 내 머리를 망쳤다" 로 끌고 가지는 않았다. 가만히 보니 못 한 게 아니라 시간을 안 들인 것에 가까웠다. 그 코드를 손으로 짰다면 분명히 떠올렸을 것이다. 다만 손으로 짰다면 두세 시간이 걸렸을 텐데 AI 와 같이 하니 30분에 끝났다.
효율은 분명히 늘었다. 같은 시간에 두세 배의 결과를 낸다. 문제는 그 결과가 내 머리에 같이 들어오느냐였다. 시간을 줄인 만큼 머리에 남는 양도 줄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. 인지 부채는 일을 안 한 것에 대한 빚이 아니라, 일을 짧게 끝낸 것에 대한 빚이었다.
익숙한 분야는 반박이 자동, 낯선 영역은 그대로 받는다
또 알아챈 건 분야에 따라 위험도가 다르다는 점이다. 내가 잘 아는 영역에서는 AI 의 답을 받자마자 본능적으로 반박하고 비교한다. "여긴 왜 이렇게 짰지", "이 케이스는 빠진 것 같은데" 가 거의 자동으로 나온다. 머리에 비교 기준이 깔려 있으니 AI 출력이 한 번 걸러진다.
반대로 처음 접하는 영역에서는 받은 답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. 비교할 기준이 머리에 없으니 의심할 거리가 없다. 인지 부채가 가장 빨리 쌓이는 자리가 바로 거기다. 잘 모르는 영역일수록 한 번 멈추고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하는 습관을 붙여야 한다는 게 그날 이후의 결론이었다.
인지 부채를 줄이려면
AI 를 생각 없이 쓰지 않는다. 이 단순한 룰 하나로도 인지 부채는 한참 줄어든다. 답을 받기 전에 잠시 머리로 윤곽을 잡고, 받은 답에는 한 번이라도 반박을 시도한다. 효율과 사고력은 양자택일이 아니다. 다만 둘을 같이 노리겠다는 자세부터 잡지 않으면, 어느새 자기 글을 자기가 전혀 못알아보는 날이 올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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